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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소개: 소중한 것들은 쉽게 잃어버리기 쉽다

1부: 충실함의 원칙

성경은 남성을 지도자로 부릅니다

성경은 남자들에게 양육자가 되라고 요구합니다

성경은 남자들에게 보호자가 되라고 요구합니다

성경은 남자들을 하나님이 정하신 관계로 부릅니다

2부: 결혼 생활에서의 성경적 남성성

부부의 영주권

부부 양육

결혼 보호

제3부: 아버지로서의 성경적 남성성

아버지 같은 주권

아버지로서의 보호

아버지적 양육: 독서, 기도, 일, 놀이

결론

남자답게 행동하라

저자: Richard D. Phillips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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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소중한 것들은 쉽게 잃어버리기 쉽다

귀중한 것들이 얼마나 쉽게 잃어버릴 수 있는지 저는 놀랍습니다. 개인은 순수함, 정직함, 좋은 평판과 같은 귀중한 소유물을 빠르게 잃을 수 있습니다. 교회도 귀중한 것들을 잃을 수 있으며, 오늘날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릴 수 있는 이상 중 하나는 강하고 성경적이며 자신감 있는 기독교적 남성성입니다. 얼마 전만 해도 미국 남성들은 "여성적인 면"(제 이름은 샤론)과 접촉하라는 말을 들었고, 이런 종류의 문화적 어리석음으로 인해 경건한 남자, 사랑하는 남편, 좋은 아버지, 충실한 친구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오해가 생겼습니다. 

오늘날 남성성에 대한 문제가 세속 문화의 더 광범위한 문제에서 부분적으로 발생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 남성들이 아버지 없이 자라거나 아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아버지와 함께 자라기 때문에 남성성에 대한 혼란이 불가피합니다. 세속적 미디어는 우리 모두에게 허황된 여성성과 남성성의 이미지와 모델을 폭격합니다. 한편, 점점 더 많은 복음주의 교회에서 강하고 경건한 남성의 존재는 여성화된 영성 앞에서 후퇴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포스트모던 서구 사회의 풍요로움 속에서 남성들은 일반적으로 더 이상 소년을 남성으로 만들었던 종류의 생존 투쟁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과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고 남성적인 기독교 남성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 남성성을 되살리거나 회복할 수 있을까요? 언제나 그렇듯이 시작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강력한 비전과 단지 남자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의 의미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이 현장 가이드의 목적은 성경이 남성에게 남성으로서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이고 명확하며 요점을 잡은 가르침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그리스도인 남성이 되는 것, 우리 가족이 필요로 하는 그리스도인 남성이 되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만들고 구속하여 되게 하신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경적 답변은 매우 간단하지만,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이 연구를 통해 여러분이 깨달음을 얻고 격려를 받고, 그 결과 여러분의 삶 속의 사람들이 풍성한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인간으로서 우리의 첫 번째 우선순위가 우리를 만든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그런 다음,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설계에서 흘러나오는 성경의 세 가지 중요한 원리를 알아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하나님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주요 관계에 적용할 것입니다.  

첫 번째 우선순위: 하나님과의 관계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남자가 성경의 진정한 남성성에 대한 부름을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축복을 통해서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남자에 대한 성경적 관점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다"(창세기 1:27).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에 의해 동등한 지위와 가치를 가지고 창조되었지만, 다른 디자인과 소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가장 높은 소명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방식에서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창조하기 전에 하나님은 그의 단순한 말씀으로 사물을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창조하면서 하나님은 개인적인 투자를 보였습니다. " 주님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산 피조물이 되었더라”(창세기 2:7). 주님은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얼굴을 마주하고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 창조의 이러한 언약적 본성은 하나님이 당신을 알고 싶어하시고, 당신이 그분을 알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개인적인 관계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성령이 내주하심을 경험하여 그분의 의로움 안에서 살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어 땅에 자신의 영광을 퍼뜨리고 그분을 경배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어떤 남자들은 경배를 진짜 남자가 하는 일에 흥분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영광을 돌리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높은 소명이자 특권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적 남성성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매일 공부하고 기도하는 데 전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아담의 얼굴에 비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아담을 알고 그의 축복을 누리는 빛입니다(시편 119:105).  

하나님께서 첫 인간을 창조하신 직후, 아담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느니라"(창세기 2:8). 처음부터, 사람들은 주님을 섬기는 데 생산적이어야 했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무엇일까요? "당신은 어떤 일을 합니까?" 사람과 일을 동일시하는 것은 성경의 그림과 일치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일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정복하며,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고 명령하셨습니다.

창세기의 첫 장에서 그리스도인의 남성성에 관해 배운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지시할 권리가 있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남성성은 하나님과 그의 길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서 흘러나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경배하며 살 수 있도록 그분의 영을 우리 안에 두셨습니다.
  4.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 사람에게 일을 맡기셨는데, 이는 그리스도인 남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생산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첫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죄에 빠졌다는 사실(창세기 3:1-6)을 언급하지 않고는 창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창조 설계에 미치지 못하는 죄인입니다(롬 3:23; 5:19). 바로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여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심으로써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창조 설계에 따라 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의 축복을 위해 창세기의 첫 장에 계시된 설계를 성취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인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며, 그 은혜는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러한 첫 번째 우선순위로부터 남자로서의 충실함에 대한 중요한 원칙이 흘러나옵니다.

1부: 충실함의 원칙

성경은 남성을 지도자로 부릅니다

우리가 말한 대부분의 내용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도 해당되지만, 너무 중요해서 건너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남성에게 주어진 독특한 소명을 찾을 때,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우리의 첫 번째 원칙, 즉 남성적 소명을 강조합니다. 각하. 간단히 말해서, 주님은 권위와 책임을 모두 포함하는 관계에서 남성에게 우두머리 직분을 부여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모든 사람과 사물 위에 있는 높은 주님이십니다. 하지만 남성은 그분이 우리에게 맡기신 책임의 영역에서 주권을 행사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성경적 남성성에 대한 가장 좋은 요약 중 하나는 주님께서 족장 아브라함에 대해 하신 말씀에서 나타납니다. 

내가 그를 택한 것은 그로 자기 자손과 그 집안을 명하여 여호와의 길을 지키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 공의와 정의를 행함으로써 주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가져다주실 것입니다(창세기 18:1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녀와 집안에 대한 권위를 행사하기를 기대하셨음을 유의하십시오. 이는 아브라함의 책임 하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가족이 “주님의 길”을 지키도록, 즉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도록 하는 방식으로 인도해야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경건한 지도력을 통해 “ 주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가져다주실 것입니다.” 성경적 남성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진술입니다. 그리스도인 남성이 가족을 인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실현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은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길을 지키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인도하고 명령하도록 명령받았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권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의 모든 내용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대로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리더십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인류와 언약을 맺으셨을 때, 그는 아담에게 명령을 내리셨고 하와에게는 내리지 않으셨습니다(창세기 2:16-17).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모두 명령을 내리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령하셨고, 하와에게 알리는 것은 아담의 책임이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종류의 동물에게 이름을 지은 사람은 남자였습니다(창세기 2:19). 무언가에 이름을 지을 권리가 있다면, 당신은 그 주인입니다! 아담은 심지어 여자에게 하와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남자들에게 주권을 통해 자신을 섬기라고 부르신 표현이었습니다(창세기 3:20).  

경건한 주권을 행사하려면 남성이 책임을 받아들이고 권위를 행사해야 합니다. 룻기 2장에서 보아스라는 지주가 가난하지만 덕이 있는 여인이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을 보았을 때 좋은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수확 후 남은 작은 것을 줍는 일). 보아스는 그녀의 처지에 있는 여성들이 취약하고 그의 모든 남자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룻에 대해 알아보았고 그녀가 고귀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도록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무모한 그의 부하들에게 그녀를 괴롭히지 말라고 명령했고, 그녀가 목마르면 마실 것을 마련해 주었습니다(룻기 2:9). 이것이 경건한 주권입니다! 그 남자는 책임을 받아들이고 권위를 행사하여 궁핍한 여인이 보살핌을 받고 보호받도록 했습니다. 보아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자비와 의로움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남성들이 성경을 직접 읽을 때 발견하고 배우는 우선순위입니다. 보아스는 하나님이 주신 주권을 행사하여 그의 집안을 다스렸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사람들이 돌보아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부르시는 종류의 주권에 대한 훌륭한 그림입니다.

남자가 인도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는 이미 아브라함이 그의 집안을 지휘하지 않으면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또 다른 예는 다윗 왕이 그의 가족과 관련하여 실패한 것입니다. 다윗은 성경의 위대한 영웅 중 한 명입니다. 그는 골리앗을 죽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전쟁에서 이끌었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세웠으며 시편의 많은 부분을 썼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가족에서 완전히 실패했으며, 이러한 리더십의 소홀함은 다윗의 삶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그가 백성을 위해 이룬 많은 좋은 일을 망쳤습니다.

다윗의 아들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유명한 악당들의 명단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첫 번째 사람은 암논입니다. 이 아들은 아름다운 이복 누이 다말에게 너무 반해서 그녀를 성적으로 폭행한 다음 공개적으로 그녀를 모욕했습니다. 사무엘하 13장을 읽어보면 다윗이 딸의 위험을 알고 개입하여 그녀를 보호했어야 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다윗이 이 범죄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자 다말의 친오빠 압살롬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동생 암논을 죽여 왕가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다윗은 지휘하지 않고 압살롬이 그저 유배를 가게 두었습니다. 이 유배에서 압살롬은 다윗의 왕국을 거의 전복할 뻔한 반란을 모의했고 많은 군인이 죽은 큰 전투가 필요했습니다(사무엘하 13~19장 참조). 다윗은 생애 마지막에도 또다시 사악한 아들 아도니야를 두었는데, 그는 다윗의 후계자인 솔로몬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려고 했습니다(열왕기상 1장).

슬픈 사실은 다윗의 통치가 그가 가족을 이끌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과 혼돈으로 끝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두 가지 설명을 제공합니다. 열왕기상 1:6에는 다윗이 아도니야를 용서한 것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이 그의 모든 아들들에게 사실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어느 때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하고 물어서 그를 불쾌하게 한 적이 없었다." 다윗은 아들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고 그들에게 권위를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삶(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그들의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지 않았고 그들을 바로잡거나 징계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전쟁을 치르고 노래를 쓰는 데 너무 바빠서 아버지로서의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실패는 남성이 특히 가정에서 주권을 행사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다윗의 리더십 실패에 대한 또 다른, 더욱 통찰력 있는 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문제가 시작되기 전으로 돌아가서 밧세바와 관련된 다윗의 큰 죄를 발견합니다. 사무엘하 11장은 직장과 가정에서 의무를 회피하려는 유혹을 받는 그리스도인 남성들에게 경고를 제공합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지만 다윗은 집에 머물러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는 경계를 늦추고 아름다운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정욕의 유혹에 쉽게 걸렸습니다. 남자로서의 그의 몰락을 보여주는 짧은 연속에서 다윗은 밧세바를 불러 데려갔는데, 그녀가 자신의 가장 뛰어난 군인 중 한 명의 아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밧세바가 임신했을 때 다윗은 그녀의 남편을 죽이는 데까지 나아가 그녀와 결혼하여 자신의 죄를 은폐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아들들이 나중에 지은 죄가 그들이 다윗이 지은 죄의 패턴을 따랐다는 것을 알아차리셨나요? 다윗은 아름다운 소녀를 폭행했고, 그의 아들 암논도 그랬습니다. 다윗은 의로운 사람을 상대로 음모를 꾸며 그것을 은폐했고, 나중에 압살롬이 걸을 길을 마련했습니다. 교훈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 남성이 이끌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리더십은 우리가 보여주는 믿음과 경건함의 모범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면 - 그리고 우리는 죄를 지었습니다 - 우리는 회개하고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하며, 우리의 사악한 습관을 바꾸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우리가 경건함의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주권에 대한 부름은 가짜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다윗 왕처럼, 하나님의 축복은 이끌도록 부름받은 사람이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실될 것입니다.

계속하기 전에, 경건한 남자가 아내와 가족을 인도하기 위해 하는 몇 가지 일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진실하게 생활함으로써 모범을 보입니다.
  • 그는 그의 가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가르치는 충실한 교회에 다니도록 보장합니다.
  • 그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가족들에게 그와 같이 하라고 권고합니다.
  • 그는 아내와 자녀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행사하여 그들이 올바르게 살도록 격려합니다.

성경은 남자들에게 양육자가 되라고 요구합니다

성경은 남성에게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줄 뿐만 아니라 남편, 아버지, 그리고 집 밖에서 지도자로서 어떻게 섬기고 이끌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앞서 창조에서 남성을 위한 하나님의 설계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의 가치를 언급했습니다. 사실, 성경적 남성성에 대한 가장 유익한 진술 중 하나는 창세기 2:15에 나오는데, 저는 다른 곳에서 남성적 명령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성경 전체에서 볼 수 있는 패턴을 설정하여 남자들에게 그리스도인 지도자로서 성공할 수 있는 두 가지 과제를 제공합니다. 주님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느니라"(창세기 2:15).

에덴 동산은 주님께서 인류를 위해 설계하신 언약 관계의 세계였습니다. 여기에는 결혼, 가족, 교회, 심지어 직장도 포함되었습니다. 주님은 아담을 이 동산에 두셨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곳에서의 삶을 위해 설계하신 관계에도 두셨습니다.

제가 집중하고 싶은 두 단어는 "작업"과 "유지"입니다. 여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성경적 남성성의. 무엇 하나님께 순종하는 주권입니다. 어떻게 일하다와 지키다, 이 두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남성성의 궤적을 설정합니다. 이 두 단어 중 두 번째 단어인 지키다(keep)는 보호하고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다음 섹션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명령 중 첫 번째 단어는 일하다(work)로, 좋은 수확을 거두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투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 아담이 정원에 배치된 경우 일하다(work)는 그가 토양과 식물을 경작하여 자라서 풍부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남성다움에 대한 두 번째 성경적 원리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남자가 주권자로 부름받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남자를 양육자가 되도록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일하는 것에 대한 성경적 관념은 경작하고 양육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관념과 가장 동떨어진 남성성의 측면일 수 있습니다. 남성은 종종 "강하고 조용한 유형"으로 여겨지며, 감정을 거의 전달하거나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남성에게 관계에서 하라고 부르시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아담의 손가락은 정원의 흙으로 갈색이 되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남성의 손은 아내와 자녀의 마음 흙으로 갈색이 되어야 합니다. 남자가 직장에 있든, 교회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든, 집에서 인도하든, 그는 개인적인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축복을 가져다주고 성장하도록 설계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정말 존경하는 남성 상사가 악수하고 훌륭한 일을 했다고 말해준 적이 있나요? 아마도 당신을 믿는다고 말해준 코치나, 당신을 따로 불러 진정한 잠재력이 있다고 말해준 선생님이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남성의 "일"입니다. 마음을 직접 꿰뚫는 독특하고 남성적인 사역입니다.  

대학 시절 제가 가장 좋아했던 여름방학 아르바이트는 조경사에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우리는 작업 현장(대개는 누군가의 집)으로 차를 몰고 가서 나무를 심고, 정원 벽을 쌓고, 덤불을 줄지어 심었습니다. 힘들지만 만족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차를 몰고 가면서 거울을 보면서 우리가 뭔가 좋은 것을 성취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특히 우리의 지도와 보살핌을 받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갖기를 원하시는 만족감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지침을 주고, 그들의 마음을 알고, 우리 자신의 마음을 공유하고,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영감과 격려를 제공해야 합니다.

남성이 양육하고 보살피라는 이 명령은 성 역할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폭발시킵니다. 우리는 여성이 주된 양육자이고 남성은 거리를 두고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남성에게 우리의 리더십 하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르고 성격을 형성하는 주된 책임을 요구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양육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자녀의 마음에 경작하고 심는 일에 의도적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문제를 다룬 상담사라면 누구나 자녀에게 아버지와의 정서적 거리보다 더 해로운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집착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성에게 정서적, 영적 양육이라는 주된 사명을 주셨지만,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그것을 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나 직원의 마음에 가장 빨리 접근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은 어깨를 두르거나 등을 두드리는 남성의 팔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입견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양육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잠언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잠언 23:26입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라." 물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먼저 아들, 딸 또는 직원에게 마음을 주었을 것입니다. 저는 수년간 미군에서 기갑 장교로 복무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지금 저는 여러 지휘관들을 돌아보는데, 그중에는 제가 (실제로) 유리창을 기어들어가고 싶어했던 사람도 있고, 전혀 영감을 주지 못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위대한 지휘관들에 대해 제가 기억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장교와 병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웃고, 가르치고, 바로잡고, 격려했습니다. 그들은 현장에 있었고 열심히 일했으며, 병사들이 이기기를 매우 원했습니다. 당신은 그들을 알고 있고 그들도 당신을 아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모든 경기장에서 남성의 리더십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원하고, 아버지가 마음을 주면 그들은 보답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줍니다. 

물론 리더십은 결코 재미와 게임만은 아닙니다. 따라야 할 명령이 있습니다. 시정과 처벌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성경적 사람은 따르는 사람들의 이익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그들이 잠재력을 발휘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리더십의 모든 과제를 수행합니다. 그런 아버지가 야구 경기 중에 아들이나 딸을 응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롱하거나 괴롭히지 않고, 공을 던지거나 치는 법을 가르치는 데 몇 시간을 보낸 다음, 그들이 성공하면 모든 공을 그들에게 돌립니다.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일"할 때, 즉 에덴동산의 아담처럼 그들의 마음을 양육하고 세울 때, 수혜자들은 그의 관심에 기뻐하고 그의 사랑의 영향으로 성장합니다.

성경이 일하고 양육하라는 남자의 소명을 묘사하는 또 다른 방법은 양을 데리고 있는 목자의 이미지를 통해서입니다. 시편 23편은 양들의 복지에 전적으로 투자하고, 양들을 인도하고, 섬기고, 양들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는 목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는 나를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십니다.

그는 나를 고요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내 영혼을 회복시키시네.

그는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시느니라 (시편 23:1-3)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 특히 아내와 자녀를 양육하는 일에서 남자들을 부르시는 종의 주인직입니다. 노력, 주의, 그리고 열정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되었습니다(요한복음 10:11). 우리 영혼의 목자이신 예수님에 대해 이 말씀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고, 다른 사람들을 양육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남성다움의 가장 위대한 모범으로,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양육하고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셨고, 심지어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키우고 인도하는 일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그리고 어떻게 하고 싶어하는지!) 진단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 나는 내 아내와 아이들(혹은 중요한 관계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가까워서 그들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고 있는가?  
  • 내가 돌보는 사람들이 내가 그들을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끼는가?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격려하고 가르치는 방식으로 말하는가?
  • 내 아내와 아이들(또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안다고 느낄까? 내가 그들에게 내 마음을 공유했을까? 내가 열정을 쏟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고 느낄까? 내가 그들과 그들의 축복에 열정을 쏟는다고 느낄까?
  •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펴보면, 그분은 제자들과 교감하고 그들을 영적인 성장으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셨을까요? 저는 그것을 경험하고 따라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남자들에게 보호자가 되라고 요구합니다

창세기 2:15의 남성적 명령의 두 번째 부분은 "지키는 것"인데, 이는 남자가 하나님께서 그의 보살핌 아래 두신 것을 지키고 보호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성경적 남성다움을 위한 세 번째 원칙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삶을 돌보시는 주님의 목양에 대해 생각했을 때, 그는 주님께서 그를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보호하신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악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위로하심이니이다"(시 23:4). 마찬가지로, 어떻게 남성의 리더십에는 양육하고 격려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경비를 서는 것도 포함됩니다.

성경에서 "일하는 것"과 "지키는 것", 즉 건축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것을 모두 볼 수 있는 또 다른 구절은 느헤미야 4:17-18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성벽을 쌓을 때입니다. 느헤미야는 사람들에게 한 손에 삽이나 삽을, 다른 손에 칼이나 창을 들게 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 남성다움입니다. 건축하고 안전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에서 주님이 목자로서 위대한 모범이신 것처럼, 주님은 시편 121편에서 자신의 보호자적 돌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거기에서 주님은 자신의 백성을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너희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라. 보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라"(시 121:5). 시편 기자는 " 주님 “너를 모든 악에서 지키시고 네 생명을 지키시리라”(시편 121:7).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바로잡아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지켜보십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것을 지키는 사람으로서의 우리의 모범이 여기에 있습니다.

남자가 된다는 것은 위험이나 다른 악이 있을 때 일어나서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게으르게 서서 해를 끼치거나 사악함을 허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들어가는 모든 언약 관계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 가족에서 우리의 존재는 아내와 아이들이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세속주의와 오류에 맞서 진실과 경건함을 위해 서야 합니다. 사회에서 우리는 악에 맞서고 국가를 위험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남자로서 우리의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슬픈 현실은 많은 경우 우리가 아내와 자녀를 보호해야 할 가장 큰 위험은 우리 자신의 죄라는 것입니다. 저는 몇 년 전에 결혼 생활이 흔들리는 한 남자에게 상담한 것을 기억합니다. 어느 순간, 그는 남자가 총을 들고 집에 들어온다면 아내를 보호하겠다고 자랑했습니다. "나는 그녀를 위해 총알을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통찰력을 얻어 "사실, 내 집에 들어와서 아내를 다치게 하는 사람은 나입니다."라고 인정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돌보는 사람들을 우리 자신의 분노, 가혹한 말, 자기중심성, 방치로부터 보호해야 합니다.

보호하고 지키려는 남성적 소명과 관련하여 우리가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나는 그들에 대해 무엇을 하고 있나요?
  • 내 아내(또는 내가 돌보는 다른 사람들)는 내가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낄까요? 그녀가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하기 위해 어떤 변화를 해야 할까요?
  • 다른 사람, 특히 가족에게 해를 끼치는 내 죄는 무엇인가? 나는 내 죄악스러운 습관을 다룰 만큼 그들을 신경 쓰는가? 나는 습관적으로 화가 나 있는가? 나는 학대하거나 거칠게 말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목사님과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변화를 추구했는가? 나는 이런 죄에 대해 기도했는가? 내가 이런 해로운 행동을 회개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성경은 남자들을 하나님이 정하신 관계로 부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남성다움에 대한 기본적인 성경적 구조입니다. 남성은 하나님을 섬기고 영광을 돌리며, 관계에서 "일하고 지키며", 즉 양육하고 보호함으로써 주권을 행사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이러한 모든 원칙은 창세기의 첫 장에서 흘러나와 성경 전체에 걸쳐 강화됩니다.  

이 분야 가이드의 마지막 주제는 남성다움이 살아가는 맥락, 즉 성경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이 설계하신 관계를 고려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남자를 동산에 두셨다"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창세기 2:8). 우리는 동산을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 하나님이 설계하신 언약의 세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과 부성이지만, 다른 관계(예: 직장, 우정, 교회)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결혼과 부성에 적용했지만, 다음 부분에서 조금 더 집중해 보겠습니다.

토론 및 반성:

  1. 남성성에 대한 이러한 비전의 어떤 부분이 남자로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당신의 생각에 도전합니까? 
  1. 이 중 어떤 분야에서 가장 성장해야 합니까? 그 중 어떤 분야가 당신의 강점입니까?

2부: 결혼 생활에서의 성경적 남성성

창세기 2:18은 주님께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신 중요한 진술입니다. 지금까지 창조 기록에서 모든 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시고 나서 그의 일을 보시고 “좋았더라”(창세기 1:25)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창조주는 좋지 않은 것을 보십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관찰하신 문제는 그의 설계에 결함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이라는 거룩한 유대 속에서 함께 살도록 설계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그에게 합당한 돕는 자를 만들어 주리라”(창세기 2:18)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남자와 경쟁자가 되도록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그를 보완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이 분명한 성경적 가르침은 남자들이 경건한 아내와 결혼하기를 원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흔히 있는 것과는 달리, 남자들은 헌신을 피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경기장에서 놀며" 보내서는 안 됩니다. 대신, 남자는 정착하고, 여자와의 관계에 헌신하고, 가족을 시작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예외가 있고, 남자들이 결혼을 원했지만 낙담했다면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요점은 남자들이 결혼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들들이 남편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키워야 하며, 가급적이면 늦지 않게 일찍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잠언 18:22은 성경의 관점을 요약합니다. "아내를 얻는 자는 좋은 것을 얻고, 아내에게서 은총을 얻는다." 주님.

우리 세대가 결혼을 하기 어렵다는 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주로 우리는 죄를 간직하고 성공을 기대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고 하는 그리스도인 남성은 아내가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인 한 결혼에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멍에를 같이 메는 것"(고후 6:14)입니다. 이 은유는 서로 맞지 않는 두 마리의 소가 멍에를 같이 메어 팀으로 끌 수 없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한 배우자는 그리스도인이고 다른 배우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 상태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한 가지 일이며, 그런 경우 우리는 복음을 섬기고 증거하는 동안 아내를 개종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리스도인인 남자가 믿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만약 우리가 남성성에 대한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유익하다고 여겼다면, 우리는 이 원칙들이 그리스도인 결혼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남자는 양육하고 보호함으로써 이끌어야 합니다. 이 틀은 결혼 생활에서 남편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며, 이 가르침은 행복한 가정에 필수적입니다.

부부의 영주권

첫째, 성경은 남편이 영적으로나 그 외적으로 결혼 생활에 리더십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경건한 아내들에게 가르치신 내용에서 이러한 강조점을 볼 수 있습니다. 

아내들이여, 주님께 복종하듯이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인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의 구세주이심이니라.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같이 아내들도 모든 일에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엡 5:22~24; 또한 베드로전서 3:1~6 참조).

남자로서 이 글을 읽을 때 우리의 첫 번째 반응은 겸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내에게 남편이 더 똑똑하거나, 더 현명하거나, 더 경건하기 때문에 그의 리더십에 복종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많은 경우, 그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신, 결혼 생활에서 남성이 우두머리가 되는 이유는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설계입니다. 남자는 단호하게 행동하도록 설계되었고(테스토스테론을 생각해 보세요) 여자는 남자 옆에 와서 그를 도우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나는 그에게 적합한 도우미를 만들 것이다"). 이것들은 성격적 특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남자를 강하지만 온유하고, 자신감이 있지만 겸손하고, 그리스도와 같은 방식으로 이끌도록 설계하신 소명입니다.

남성의 우두머리라는 것은 남편이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경건한 결혼이 무엇보다도 연합을 반영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라"(마태복음 19:6). 결혼한 부부는 합의에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남편이 이 노력을 이끌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남편과 아내는 함께 앉아 재정 목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아내는 큰 의견을 제시하고 남편보다 돈을 관리하는 데 더 능숙할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재정적 결정을 이끌어 아내의 부담을 덜어주고 돈과 기부에 대한 성경적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함께 참석할 교회를 결정해야 하며, 남편은 충실한 성경 가르침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따라서 결혼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남편은 경건한 연합을 목표로 이끌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결정에는 기도가 필요하므로 리더십은 항상 공동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 전념해야 합니다.

우리가 "책임지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 아내에게 복종하라고 말하는 동일한 구절이 또한 남성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종의 리더십을 요구합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것같이 하라"(엡 5:25). 예수께서는 어떻게 교회를 사랑하셨을까요? 교회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의 관심사, 특히 그녀의 영적, 정서적 필요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이 "발을 내밀어" 아내에게 복종하라고 요구할 때, 그것은 보통 성경적 가르침이나 지혜에 순종하거나 남편이 아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자기 희생으로 결혼 생활을 이끄는 남편은 아내가 그의 지도력에 복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자주 보지 못할 것입니다.

부부 양육

남자들은 아내를 인도할 뿐만 아니라 “일”도 해야 합니다. 즉, 아담이 첫 번째 동산을 경작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아내를 양육해야 합니다. 즉, 남편은 아내의 영적, 정서적 축복에 대한 계획을 가져야 합니다. 그는 아내의 성장과 행복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로 여겨야 합니다. 그는 그저 “그녀와 결혼한 다음 다른 우선순위로 옮겨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결혼한 모든 날을 아내를 세우고 그녀의 축복을 격려하는 데 바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5장 28-30절에서 결혼에 관해 말한 내용에서 이러한 우선순위를 볼 수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육체를 미워한 적이 없고 오히려 기르고 아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기르심과 같으니라 우리가 그의 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남자가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피곤하면 잠을 자는 등 자신의 신체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본능이 있는 것처럼 남편도 아내의 필요에 대한 반사적 반응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남편이 아내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필연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목사로서 저는 남편들이 축구 라커룸에서 남자들에게 말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아내에게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지 마세요. 그녀는 당신의 아내입니다! 남자들은 말하기 전에 생각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아내에게 말해야 합니다.

남자가 아내를 양육하라는 부름은 그가 아내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성은 남성에게 완전히 미스터리이기 때문에, 이것을 배우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에게 묻는 것입니다. 그냥 이렇게 해보세요: 아내에게 다가가서 그녀를 양육하는 데 헌신하고 싶다고 말하고, 그녀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말하세요. 그녀가 무엇이 그녀를 불안하게 하는지, 무엇이 두려운지, 무엇이 그녀를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끼게 하는지, 무엇이 기도하고 갈망하는지 말해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양육하는 남편에게 유용한 정보입니다. 좋은 연습은 매일 아침 아내와 함께 기도하고, 어떻게 그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지 진심으로 묻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는 점점 더 마음을 열고 당신의 사랑 어린 사역을 신뢰하고, 당신의 양육하는 보살핌은 두 분을 부부의 사랑으로 묶어줄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에베소서 5장에서 사도 바울의 결혼에 대한 가르침을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7에서도 귀중한 가르침을 전합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남편에게 가장 귀중한 구절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들아, 아내와 이해심을 가지고 사귀고 아내를 더 약한 그릇으로 여겨 존중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과 함께 생명의 은혜를 이어받을 자들입니다. 이는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우리가 아내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할 때, 그는 다른 곳에서는 “교감하다”는 뜻인 동사를 사용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식사 시간과 섹스를 위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삶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가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는 우리가 그녀에 대한 지식, 주로 그녀의 마음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존경심을 보인다”는 것은 우리의 아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녀가 사랑받고 소중히 여겨진다는 것을 전달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아내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내를 소홀히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소홀히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이 "일하는" 원칙, 즉 아내를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양육하는 원칙은 종종 기독교 결혼 생활에서 빠진 요소입니다. 남자들은 단순히 아내의 마음을 가꾸어야 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기독교 남자가 아내에게 이 소명을 소홀히 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진심으로 (그리고 그녀의 도움으로) 그것을 하기 시작하면 종종 결혼 생활에 혁명을 일으키고 부부를 그 어느 때보다 더 결속시킬 것입니다.  

결혼 보호

"일하고 지키라"의 두 번째 부분은 남자가 결혼 생활에서 아내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남편이 아내 주변에서 행동하고 말하는 방식은 아내가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신체적 안전도 포함되며, 남자는 아내를 위해 이를 보장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 남성은 아내를 가장 명백하고 해로운 죄로부터 보호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너무 많은 남성이 폭발적인 분노를 보이거나 아내에게 거칠게 말하여 결혼 생활의 신뢰와 안전을 훼손합니다. 분노이든 다른 죄악적인 경향이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와 악덕을 경건한 미덕으로 대체함으로써 아내를 보호합니다.

"지키는 것"에는 건강한 결혼 생활에 매우 중요한 관계 보호와 보안도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아내는 다른 여성에 대해 안전하다고 느껴야 합니다. 경건한 남자는 다른 여성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섹시한지에 대한 말을 하지 않을 것이고, 아내는 그가 다른 여성을 쳐다보는 것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성적 순결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특히 남편에게 적용됩니다. "더러운 것과 어리석은 말과 거친 농담은 없어야 합니다. 이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니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엡 5:4). 

행복한 결혼 생활을 원한다면, 우리는 이성과 가까운 친구 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고, 다른 여성과 일대일로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이것은 양쪽 모두에게 효과가 있는데, 그런 행동은 결혼 생활의 안전을 위협할 뿐입니다). 남자가 여성과 가까운 직장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는 아내와 정서적으로 배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특히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목사(저처럼)이고 교회에서 여성을 섬겨야 한다면, 그는 정서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할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빌리 그레이엄 규칙"이라고 불렸던 것을 실행했고, 지금은 기독교 전 부통령을 위한 "마이크 펜스 규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규칙은 어머니, 아내 또는 딸이 아닌 여성과 결코 닫힌 문 뒤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가족 외의 여성과 차를 혼자 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가족 외의 여성과 전혀 혼자 만나지 않으며, 대화를 해야 할 때는 문을 열어두거나 적어도 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을 고집합니다. 이것은 유혹과 중상모략에 대한 당신 자신을 위한 현명한 보호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답답하거나 고지식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당신의 아내는 그것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녀는 그 관계에서 안전함을 느낄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결혼하지 않고 단지 데이트만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혼 생활에서 남성다움에 대한 성경적 패턴이 결혼으로 향하는 관계에서 잘 작동한다는 것을 격려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결혼 관계를 발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부터 좋은 결혼 생활을 만드는 원칙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즉, 남자친구는 희생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이끌어야 합니다. 그는 그녀가 "우리가 관계에서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대화를 촉구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것을 꺼내고 자신의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히 합니다(그리고 물론, 때때로 이것은 그가 헤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커플이 함께 있을 때, 남자는 자신, 자신의 일, 스포츠 팀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모든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그녀에게 무엇이 흥미로운지,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그녀의 기도가 필요한지 등을 묻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안전하다고 느끼게 합니다. 즉, 그는 그녀에게 성적으로 압력을 가하지 않고 성적 순수성을 주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그녀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이러한 성경적 패턴은 경건한 결혼 생활을 준비하는 좋은 방법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여성이 당신과 사랑에 빠지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저는 앞서 보아스가 룻이 과부로서 밭에서 이삭을 주워 모으던 시절에 룻의 안녕에 대한 책임을 맡았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친절했고, 그녀가 안전하도록 해주었으며, 그녀의 생계를 아낌없이 돌보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으로 끝나는 데는 어떤 놀라운 일이 있을까요? 우리는 룻기 3장 9절에서 룻이 보아스에게 다가가 결혼을 제안하는 것을 읽습니다. "나는 당신의 여종 룻입니다. 당신의 여종에게 날개를 펼쳐 주십시오. 당신은 구속자이십니다." 그녀가 어떻게 표현했는지 주목하세요. 그녀는 보아스가 그리스도와 같은 행동을 보여 그녀를 대했기 때문에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분명히 어떤 그리스도인 남성도 경건한 여성의 삶에서 예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예수를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그녀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결혼 생활에서 남성다움에 대한 성경적 패턴을 따른다면, 우리의 아내는 우리에게 이런 감정을 느낄 것입니다.

토론 및 반성:

  1. 충실한 남편의 좋은 예를 아십니까? 멘토와 그가 좋은 본보기가 되는 이유를 논의하세요.
  1. 결혼했다면, 남편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한 가지 분야는 어디인가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면,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할 수 있나요?

제3부: 아버지로서의 성경적 남성성

결혼이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관계라면, 아버지 역할은 아마도 남자가 채워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남편이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면, 그리스도인 아버지는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성품을 본받아야 합니다. 다행히도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아들이 같은 대본을 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남성다움에 대해 배운 원칙이 충실하고 효과적인 그리스도인 아버지가 되는 열쇠가 됩니다.

아버지 같은 주권

자녀에게 명령할 수 있는 아버지의 권위는 에베소서 6:1의 가르침에서 강조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은 일이니라." 자녀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더 크고 강하며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이며, 이러한 근거로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더욱이 성경은 자녀가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부모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가르칩니다. 자녀가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것은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게 하려 함이라"(엡 6:3). 따라서 아버지는 자녀에게 권위를 행사하고, 예를 들어 규칙을 주고 집행해야 하지만, 그는 또한 부드럽고 친절해야 합니다. "아버지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징계와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아버지로서의 보호

남성 리더십의 "방법"을 논의할 때, 나는 이전에 "유지"하기 전에 "일하는 것"을 고려했습니다. 이 경우, 나는 우리가 자녀를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먼저 자녀를 보호하고 지키는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고 싶습니다. 규율 우리 아이들.  

다윗 왕이 아들들을 "불쾌하게" 하지 않아서 그들이 부패한 반란자로 자라난 적이 기억나십니까?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엘리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쓸모없는 아들들은 너무나 사악해서 장막 밖에서 성적 방탕을 저질렀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셨고 엘리의 혈통은 끊어졌습니다(삼상 2:27-34). 엘리는 적어도 아들들을 꾸짖으려고 했지만, 그들을 제지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들은 죽었습니다.

이러한 예를 볼 때, 성경이 그리스도인 부모에게 자녀를 징계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즉, 자녀가 어렸을 때 부모의 불순종(및 기타 죄)으로 인해 매를 맞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언 13:24는 자녀를 징계하라는 성경의 부르심의 양면을 제공합니다. 첫째는 부정적인 것입니다. "매를 아끼는 자는 자기 아들을 미워함이라." 둘째는 긍정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자는 징계하는 데 부지런함이라." 우리가 어린 마음이 아직 유연할 때 자녀를 징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을 나중에 망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중에 적절한 권위에 복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잠언 29:15는 "훈계의 매는 지혜를 준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닥에 고통의 촉각적 인상이 마음에 덕을 원하도록 가르칩니다. 

자녀를 때릴 때 신체적으로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목표는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인상을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아버지는 항상 자제력 있게 징계해야 하며, 아들 또는 딸에게 다가가기 전에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사적인 징계는 공개적인 때리기보다 낫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아이들이 잘못한 일과 고통스러운 결과를 연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징계가 끝난 후에 그들과 화해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말하자면 매를 맞는 것은 그 인상을 잃습니다. 사춘기 전 어느 시점에, 아버지들은 불순종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말씀에 부드러운 양심을 형성하기 위해 말로 꾸중하는 것에 의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와 강한 애정의 유대감을 형성했다면, 이 꾸중은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특히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의 성경적 근거와 우리의 제한을 알려주는 삶의 경험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징계하는 것은 그들이 직면하게 될 가장 큰 위험, 즉 그들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주된 방법입니다.  

아버지 같은 양육

저는 아버지의 징계를 먼저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징계적 보호는 아버지의 양육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제자도. 아버지는 자녀를 주님에 대한 믿음과 그들의 삶을 통한 성장의 길로 직접 인도해야 합니다. 먼저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라" (잠언 23:26)고 간청하는 사람은 아버지이고, 그런 다음 책망할 때가 되면 경청을 얻습니다.

경건한 남편이 아내의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는 것처럼, 경건한 아버지도 아들과 딸의 마음을 목표로 삼습니다. 그는 성공을 행동으로만 정의하지 않고, 인격과 믿음으로 정의합니다. 잠언은 "내 아들아, 네 행동을 보여 줘"나 "네 육체적 모습을 보여 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자도는 마음을 목표로 합니다. 욕망, 열망, 정체성 감각, 목적입니다. 제자도의 양육 사역에서 아버지는 신뢰하는 사랑의 관계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공유된 유대감을 추구합니다. 우리 자녀의 마음에 다가가려면 끈기, 노력,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마음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면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우리 자신의 마음을 주고, 그들과 시간을 보내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가족으로서 역경을 다루고, 주님을 열렬히 경배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4단계 접근법을 생각해냈습니다. 독서 – 기도 – 일 – 놀이.  

 

  • 읽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성경적 진리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자녀의 제자를 양성합니다. 가장 좋은 경우, 이는 가족 예배를 위해 따로 정한 시간에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루를 보내는 동안에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난다"고 말합니다(롬 10:17).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의 힘에 의해서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성경적 진리를 자녀와 공유하고 그들과 함께 성경적 발견의 여정을 걷고 싶습니다.  

너무나 많은 아버지들이 자녀의 제자 양성을 아웃소싱하려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들은 자녀를 교회에 데려가고, 청소년 그룹에 넣고, 기독교 학교나 홈스쿨에 보내죠. 하지만 아버지를 대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녀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자녀와 함께 성경을 읽어주기 위해 성경 학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하지만 아버지가 되어 성경 교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더 좋겠죠).  

가족과 함께 성경을 읽을 시간이 없는 아버지는 자신의 우선순위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아침 식사나 저녁 식사 후에 성경 구절을 읽고 토론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성경을 읽어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와 확신의 일치로 아버지와 자녀의 마음을 하나로 묶습니다.

기도하다

우리는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그들과 함께 기도함으로써 자녀를 양육합니다. 첫째, 아버지는 자녀에 관해 기도할 것이 많습니다!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는 자녀로부터 듣고 싶어하시고 기도에 응답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더욱이 우리 자녀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듣고 자라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하나님께 대한 경의와 그의 축복에 대한 감사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필요한 것과 그들이 느끼는 것에 대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 중 일부를 자녀와 공유하고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대한 그들의 사랑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일하다 

아버지는 자녀와 함께 일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자녀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집안일과 학교나 교회에서 프로젝트를 주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방을 칠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것이 엉망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더라도 가치 있는 유대감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하는 가장 의미 있는 일 중 일부는 학교 교육, 운동 및 음악 훈련과 관련이 있습니다. 젊은 아버지가 마당에서 아들 또는 딸과 캐치볼을 하거나 배트를 휘두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볼 때마다 저는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자녀의 일에 지지적이고 격려적인 방식으로 더 많이 관여할수록 그들의 삶은 사랑의 유대감으로 우리의 삶과 더 많이 얽힐 것입니다.

놀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아이들과 놀면서 아이들과 소통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우리는 바닥에 누워서 아이들과 레고 프로젝트를 합니다. 아니면 그네를 타러 놀이 세트로 나갑니다. 아이들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우리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이들과 공유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우연히 여러 스포츠 팀을 열렬히 지지하고, 이 열정을 제 아이들과 공유했습니다(아이들은 모두 이 팀을 응원합니다. 다른 학교에 진학하더라도요). 우리는 패배를 애도하고 승리를 함께 축하하며 매우 즐깁니다.

이것이 제가 자녀의 삶에 적극적이고 친밀하게 관여하도록 하는 간단한 전략입니다. 독서, 기도, 일, 놀이. 저는 자녀에게 그리고 자녀와 함께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로 서로의 짐을 지고 은혜의 보좌에서 함께 주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제 자녀는 제가 그들의 일에 긍정적이고 격려하는 참여가 필요합니다(그리고 그들은 제 일에 대한 초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대일이든 가족이든 함께 놀면서 웃음과 기쁨으로 마음을 묶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은 남자가 "내 아들아, 내 딸아, 네 마음을 줘"라고 말할 권리를 사는 데 사용되는 화폐이기 때문입니다.

토론 및 반성:

  1.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와 어떤 관계였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삶 속의 아버지나 다른 좋은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본받고 싶습니까?
  1. 만약 당신이 아빠라면, 당신이 성장할 수 있는 분야는 어디인가요? 만약 당신이 아직 아빠가 아니라면, 어떻게 좋은 아빠가 될 준비를 할 수 있나요?

결론

의심할 여지 없이 결혼과 부성은 남자의 관계적 공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성경적 남자다움의 원칙이 적용되는 다른 관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신실한 교회의 일원이 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그곳에서도 남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책임지게 하실 때 주권을 행사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권위를 행사하는 종으로서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그러한 관계에 적합한 방식으로 "일하고 지킵니다." 경건한 남자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격려하고, 성경적 진리와 경건한 실행을 지킵니다.

경건한 사람도 직업이 있습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성경적 남성다움의 패턴은 계속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근로자나 부서를 책임질 때, 그는 책임을 지고 하인처럼 권위를 행사합니다. 사장은 남편이 아내를 양육하거나 아버지가 자녀를 제자로 삼는 것과 비슷하게 직원을 키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을 부패, 속임수 또는 독성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종종 가까운 우정을 맺으며, 성경적 남성다움의 패턴은 계속해서 모델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사무엘 상권에서 다윗과 요나단 사이의 언약적 유대감을 살펴보면,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격려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거기에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안녕과 명예를 지켰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말했던 성경적 남성성에 대한 부름을 기억하세요. 간단하지만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남성은 자신 아래에 놓인 영역과 사람들을 지배하도록 부름을 받고, "일하고 지키기"로 리더십을 행사합니다. 사람들을 키우고 안전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새 신자였을 때 큰 영향을 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저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그날 밤에 로렌스를 만났습니다. 그는 제가 방문했던 교회 문에서 집사로 섬기고 있던 나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개종한 후 정기적으로 교회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혼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얼마 후 로렌스가 저에게 다가와서 자신을 소개하고 제 믿음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는 저를 아침 식사에 초대했고, 그곳에서 간증을 나누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수년에 걸쳐 우리는 즐거운 우정을 유지했고, 이 나이 많은 신자는 제가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도록 기도하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저는 로렌스가 암으로 죽은 후의 장례식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저명한 사람이 아니었고 돈도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추모 예배를 위해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한 시간 이상, 이 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간증이 전해졌습니다. 물론 그의 아들들은 모두 이야기했고 그의 딸은 그가 그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그들의 믿음을 키웠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로렌스에게 도움을 받았거나 저처럼 이 그리스도의 노련한 추종자에게 제자가 된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장례식이 마침내 끝났을 때, 제 동료 목사 중 한 명이 제가 결코 잊지 못할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방금 목격한 엄숙한 행사를 조용히 되새겼습니다. 그러자 제 친구가 말했습니다. "알다시피,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온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모든 사람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실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그리스도인 남성성에 대한 이 현장 가이드를 마무리하면서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경건한 남성성의 본보기에 헌신한다면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 무엇을 하실지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 여러분이 죽으면 장례식이 계속될 것이고 사람들은 여러분에게서 받은 축복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살아 있는 동안, 충실한 사람들에게 부름을 받은 성경을 받아들이는 동안,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사랑하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된 여러분 덕분에 영원히 축복을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Richard D. Phillips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 있는 역사적인 Second Presbyterian Church의 수석 목사입니다. 그는 또한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시간강사이며, 45권의 책을 저술했고, 성경과 개혁 신학에 대한 컨퍼런스에서 자주 연설합니다. 그와 그의 아내 Sharon은 다섯 자녀를 두고 있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 살고 있습니다. Rick은 University of Michigan 스포츠를 열렬히 좋아하고, 역사 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하며, 아내와 함께 Masterpiece Theatre를 정기적으로 시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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